히로인스는 4060세대 엄마들을 위한 버티컬 소셜 플랫폼입니다. 일상 기록과 응원 커뮤니티로 시작해, 커머스까지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 저희는 히로인스와 전혀 달라 보이는 두 번째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AI-Native Spec-Driven Development OS, 플래티(Platty)입니다.
소셜 플랫폼 만들던 회사가 갑자기 개발 도구라니, 이상해 보일 겁니다. 하지만 이 순서가 아니면 플래티는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플래티는 사업 다각화 전략에서 나온 제품이 아니라, 히로인스를 살리려는 절박함에서 나온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 배경 — '25년, 지독한 데스밸리
소셜 플랫폼은 초기에 돈을 벌기 어렵습니다. 유저가 모여야 광고가 팔리고, 광고가 팔려야 돈이 도는 구조인데, 그 사이의 시간을 버티는 게 문제입니다. 히로인스는 수십만 회원 규모까지 성장했지만 '25년, 지독한 데스밸리를 마주했습니다.
살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저희가 꺼낸 회생 카드는 '올인원 광고상품'이었습니다. 브랜딩부터 바이럴, 체험단, 판매, 인사이트 리포트까지 — 광고주가 원하는 걸 한 번에 해결해 주는 상품입니다. 4060 여성에게 물건을 팔고 싶은 브랜드에게, 히로인스만큼 진심 어린 후기가 쌓이는 곳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 상품에는 전제 조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판매까지 이어지려면, 커머스가 필요했습니다.
2. 문제 — 커머스 구축, 우리에게 없던 시간
커머스는 복잡한 프로덕트입니다. 상품, 주문, 결제, 배송, 정산, 셀러 운영까지. 업계에서 통상 잡는 구축 기간이 있는데, 데스밸리 한가운데에 있는 회사에게 그만한 시간은 없었습니다.
"AI로 하면 되지 않아?"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도 그랬습니다. 클로드 코드를 도입했고, 코딩은 확실히 빨라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코딩만 빨라졌지, 회사는 그대로였습니다.

아이디어가 기획문서가 되는 데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기획문서가 개발설계문서가 되는 데 또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코딩은 빨라졌는데, 그 다음 QA 리스트와 버그픽스에 다시 사람이 붙었습니다. 전체 파이프라인에서 빨라진 건 딱 한 구간뿐이었던 겁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바이브코딩은 백지 위에서는 잘 됩니다. 하지만 수년간 쌓인 히로인스의 레거시 코드 위에서는 자꾸 엉뚱한 걸 만들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AI가 우리 서비스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이 시기에 겪은 시행착오는 Spec Driven Development: 스타트업의 개발 자동화 실험기에 자세히 적어 두었습니다.)
3. 통찰 — CPO와 CTO의 머릿속에는 뭐가 있을까
여기서 저희는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CPO의 기획서에는 빈틈이 있습니다. CTO의 코드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비스는 완성됩니다. 어떻게요? 비결은 문서가 아니라 두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같은 '서비스 논리지도'였습니다. CPO는 서비스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있고, CTO는 코드의 논리를 꿰고 있습니다. 빈틈은 그 지도가 메워주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AI가 레거시 위에서 일을 못 하는 건 능력 문제가 아니라 지식 문제입니다. AI는 CPO보다 논리적이고 CTO보다 프로그래밍을 잘합니다. 없는 건 딱 하나, 그 지도입니다.
만약 CPO와 CTO의 머릿속 같은 '서비스 논리지도'를 꺼내서 AI에게 줄 수 있다면?
플래티는 이 상상에서 시작했습니다.
4. 개발 — 배포된 코드를 '진실'로 삼다
지도를 그리려면 기준이 필요합니다. 노션 문서? 절반은 구현 안 된 채 남아 있는 위시리스트입니다. 슬랙? 결정이 뒤집힌 대화가 뒤섞여 있습니다. 저희가 찾은 유일하게 거짓말하지 않는 기준은 배포된 코드였습니다. 라이브 코드는 현재 서비스의 현실을 반영하는 '진실'이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Step 1. 코드 그래프. 모든 레포지토리의 코드를 정적 분석으로 연결해 그래프를 만듭니다. LLM에게 코드를 읽히는 방식이 아니라 정적 분석인 이유는 명확합니다. 할루시네이션이 없고, 빠르고, 쌉니다. 히로인스의 전체 서비스가 수천 개의 노드와 엣지로 연결된 하나의 지도가 됐습니다.

Step 2. 서비스 그래프. 코드의 논리 구조를 사업 단위 자연어로 요약해 연결합니다. 계정, 광고, 쇼핑, 리워드, 셀러 운영 — CTO와 COO가 서비스를 이해하는 방식 그대로요. 거대한 백과사전의 목차와 챕터별 요약본을 만드는 셈입니다.

Step 3. SOT 완성. 노션·슬랙의 자연어 정보와 데이터레이크까지 연결하되, 코드로 검증해 '진실'인 것만 지도에 추가합니다. 문서에는 있지만 서비스에 구현되지 않은 가짜 정보는 걸러집니다. 이렇게 코드 + 자연어 + 데이터가 하나로 연결된 SOT(Source of Truth)가 완성됩니다. 코드가 바뀌면 지도도 자동으로 다시 그려집니다.
이 지도 위에서 AI가 일하면, 아이디어 → Spec → Code가 끊김 없이 이어집니다. 아이디어 한 문장을 던지면 AI가 SOT에 묻습니다. "이 기능과 관련된 영역은?" "기존 흐름과 충돌해?" "빠진 조건과 예외는?" — 모든 답을 근거 코드와 함께 받아 Spec을 완성하고, 완결된 Spec이 있으면 코드 생성은 준자동입니다.

덤으로, AI가 지도 위 어떤 경로를 타고 들어가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지가 그대로 남습니다. 답이 틀리면 어디서 틀렸는지 특정할 수 있습니다. 블랙박스가 아니라 글래스박스입니다.

5. 결과 — 남들의 5분의 1 기간에 지은 커머스
'26년 초에 기획을 시작한 커머스는 그해 겨울이 끝나기 전에 완성됐습니다. 업계에서 통상 잡는 기간의 5분의 1 만에 지은 겁니다.
컨셉만 정하면 플래티의 AI가 히로인스에 맞는 Spec 문서를 알아서 설계했고, Spec대로 AI가 개발하니 전체 프로세스가 빨라졌습니다. 배포 후 버그도 혁신적으로 줄었습니다. Spec 단계에서 기존 코드와의 충돌과 빠진 예외가 미리 잡혔기 때문입니다.
이 커머스 위에서 '26년 2월, 올인원 광고상품을 출시했습니다.

결과는 숫자가 말해줍니다. 월 매출이 출시 몇 달 만에 3배, 1년 전과 비교하면 5배 성장했습니다. BEP를 달성했고, '26년 상반기에만 작년 한 해 매출을 넘었습니다.
플래티는 데모용으로 만든 도구가 아닙니다. 회사를 살리려고 만들었고, 실제로 살렸습니다.
6. 그런데 —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만들고 보니, 이 문제를 앓는 게 저희만이 아니었습니다.
Y Combinator는 "Cursor for PM"을 공식 모집 공고로 찾고 있습니다. AWS는 Kiro를, MS는 GitHub SpecKit을 내놨습니다. Snyk 창업자는 SDD 비전만으로 $125M을 유치했습니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데, 아직 아무도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공통 원인은 하나입니다. 기존 서비스(브라운필드)를 모르는 채 스펙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절박해서 판 자리가, 정확히 그 빈칸이었습니다.
그래서 '26년 6월, 플래티를 클로즈베타로 출시했습니다. 반응은 저희가 기대한 것 이상이었습니다.
"SOT 솔루션들, SDD 솔루션들 많이 봤는데 이 정도로 진전시킨 건 처음 봤다. 깜짝 놀랐다" — 제로초 (전 오늘의픽업 CTO, 『Node.js 교과서』 저자)
"회사 생산성이 정말 빨라졌다. 안 쓸 이유가 없다" — POC 진행 중인 시리즈 A 스타트업 대표
지금은 시리즈 A 스타트업과 상장사의 실제 코드 위에서 POC를 진행 중이고, 국내 유수의 대기업과 온프레미스 도입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출시 한 달 만에 스타트업부터 대기업, 공공기관까지 문의가 옵니다. 조직의 크기와 유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 — 이게 모든 조직의 페인포인트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7. 마무리 — 절박함이 만든 도구
돌아보면 패러다임시프트는 계속 이런 식이었습니다. 2022년에는 개발자 없이 국내 최초로 '노코딩'으로 만든 앱으로 VC 투자를 받았습니다. '25년에는 데스밸리에서 살아남으려고 정적분석 엔진과 요구공학을 바닥부터 파서 플래티를 만들었습니다. '26년에는 그 도구로 지은 커머스로 턴어라운드를 해냈습니다.
극한의 위기에 몰려도 어떻게든 살 방법을 찾고,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반드시 풀어내는 것. 저희는 이게 이 팀의 DNA라고 믿습니다.
히로인스는 올해 작년의 몇 배 매출을 바라보고 있고, 플래티는 이제 고객사의 코드 위에서 스스로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팀이 두 개의 성장 곡선을 그리는 중입니다. 이 여정이 재미있어 보인다면, 저희와 함께하시죠.



